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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겨울

-눈이다!

 

    창틀에 아이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매달리는 숨들이 창을 뿌옇게 만들었다. 뿌옇게 흐려진 창을 손으로 문지르는 얼룩들이 남았다. 안 오잖아. 아냐, 저기 봐. …진짜다! 자기들끼리 진위여부를 따지며 투닥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모아 환호성을 내질렀다. 낮은 키로 창틀에 켜켜이 쌓인 탓에 같은 눈높이로 앉아있는 곳에서는 도통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선을 높게 올리자니, 하얗게 빛이 바랜 잿빛 하늘은 그저 눈만 시릴 뿐이었다. 하아. 실내임에도 내쉬는 숨에 뽀얀 김이 올라왔다. 눈이 오면 날씨가 푸근해진다는데. 영원히 이런 나날이 반복될 것 같은 불안감이 추운 날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냉기에 곱는 손가락을 손을 비벼 풀어주었다. 하얗게 살이 트고 갈라진 피부 사이로는 피가 비치는 손이었다. 잔뜩 굳은살이 앉은 손으로 다시 펜을 쥐었다. 조잡한 질의 종이를 펜촉이 거칠게 긁는다. 눈이 아무리 푸근하게 내려도 그렇게 추운 겨울이었다.

 

 

 

 

**

 

 

 

 

    “눈이 와요!”

 

    창틀에 마틴이 달라붙었다. 매달리는 숨이 창을 더욱 뿌옇게 만들었다. 뿌옇게 흐려지는 창 위에 굳은살 배긴 손가락이 흥겹게 그림을 그렸다. 눈 안 온댔는데. 당신은 일기예보를 믿어요? …허. 별거 아닌 일에도 일상에 가까운 투닥거림이 빠르게 지나갔다. 창은 거실 하나만큼을 가로질러야 하는 거리였다. 실내의 온기 탓에 뿌옇게 흐려진 창으로는 바깥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을 구경하겠다고 바람에 문틀이 흔들리는 창가로 다가가고 싶진 않았다. 벽난로 가까이에 앉아 창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눈이 오면 날씨가 푸근해진다는데. 아무래도 헛말인지 그는 살아생전 그런 날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야 경험이 일천해 그렇다지만, 스무 해를 진작 넘긴 성인인 데다가 사회에 덩치 크게 자리 잡은 사람이 됐는데도 달라진 건 없었다. 어릴 적과 달라진 건 이를 악무는 대신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신문에 실린 크로스퍼즐이나 풀 수 있게 된 정도였다. 유려한 필기체로 이름이 각인된 고급 만년필이 싸구려 재생 종이를 쓴 신문 위를 긁어 지나갔다.

    벽난로의 타닥거리는 소리가 백색소음이 되어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렁이는 붉은 불꽃이 방안을 따스하게 덮었다. 훈기 도는 방 안에서도 불꽃 그림자가 닿지 않는 그늘에 두면 손가락이 굳는 기분이 들었다. 손을 주무르자 뻐근한 손가락 마디에서 시원한 소리가 났다. 손이 풀린 김에 가볍게 튕기자 손가락 사이로 만년필이 핑그르르 돌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계속 거기 있을 거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옆자리에 앉아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온기의 커다란 한 뭉텅이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창을 바라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늘한 안경테를 끌어 올린 까미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온몸으로 대놓고 신경질을 부리며 테이블 탁자 위에 개켜있던 담요를 무릎 위에 올렸다. 그냥 옆에 앉아만 있으면 되는데 그걸 도통 들어주질 않는다. 저 좋을 대로 생각하며 까미유는 괜히 신문 귀퉁이에 비싼 잉크를 낭비해 의미 없는 선을 쭉쭉 그었다.

 

    “눈이 온다니까요?”

    “…지난주에도 지긋지긋하게 왔잖아.”

    “그거랑은 다르죠.”

 

    단호한 마틴의 목소리에 까미유의 얼굴에 드러난 불만은 짙어만 졌다. 뭐가 다르다는 거야. 하얗고, 춥고, 지저분하고. 투덜거리는 목소리에도 돌아오는 건 픽 웃어버리는 웃음소리가 끝이었다. 매 겨울이면 지긋지긋하게 퍼붓는 데다가, 바로 지난주에는 출근이 어려울 정도로 쏟아진 게 눈이었다. 하루 정도 마비되었던 도시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을 땐. 움직일 수 있도록 차도와 인도 중앙만 대충 정돈한 옆으로 어느 도로고 할 거 없이 눈이 담벼락처럼 쌓여있었다. 볕도 따뜻하지 않은 도시다 보니 그것들이 전부 녹아내려 하수와 땅속으로 사라진 것도 바로 얼마 전. 그러니 지금 또 내리기 시작하는 눈이 달갑지 않았다.

 

    “엄연하게 달라요.”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들으라고 머릿속으로 시끄럽게 떠올리고 있으면서.”

    “그건 네가 훔쳐 들은 거잖아. 난 안 했어.”

 

    시답잖은 대화가 다시 꼬리를 이었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장작더미에서 나는 소리처럼 그들 사이에 당연하게 자리하는 별 볼 일 없는 내용이었다. 그저 요약되기를 그들의 일상이었다. 이내 정적이 흘렀다. 장작 위를 춤추는 불꽃은 타닥거리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창밖을 장식하는 눈보라 역시도 문틀을 흔들어 자신을 알렸다. 그런데도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실내는 나른하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뭐가 다른데.”

 

목소리에는 옅은 졸음이 묻어났다. 규칙과 불규칙 사이를 오가는 불꽃이 추운 몸을 노곤하게 녹인 탓이었다. 나른한 질문에 창틀에 기대어 눈이 흩날리는 모습을 감상하던 마틴이 답했다.

 

    “크리스마스에 오는 눈이잖아요.”

 

    돌아오는 대답에 아직 무릎 위에 있는 신문을 바라봤다. 귀퉁이에 자그마하게 적힌 날짜를 확인하고 옆에 놓인 탁상 달력을 확인했다. 아직 이브잖아. 그건 뭐 크리스마스 아닌가요? 이어지는 대화는 나른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이벤트라고 서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빴던 것도 같은데 올해는 그저 늘어져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따로 그러자고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세상이 하얗다고 특별히 산타가 선물을 두 배로 주는 것도 아닌데.”

    “당신이 그런 소리도 다 하네요.”

    “…그럼…… 크리스마스니까, 그런 거로 해.”

 

    졸음을 이기지 못한 듯이 말하는 도중에도 하품이 이어졌다. 말소리가 늘어지고 목소리가 작아졌다. 조용했다. 갑자기 찾아오는 적막에, 혼자서도 정적인 풍경을 마음껏 즐기고 있던 마틴이 뒤를 봤다. 의자에 파묻히듯이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까미유의 모습이 보였다.

느릿하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갔다. 숨 뱉는 소리만 옅게 흘러나왔다. 장작불 소리가 그마저도 잡아먹을 듯이 타닥거렸다. 힘이 빠진 손에서 만년필을 빼내어 탁자 위로 올리고 바스락대는 신문 역시도 내려놓았다. 숨소리는 계속 고르게 흘러나왔다. 무릎만 대충 덮은 담요를 제대로 펼쳐 가슴 언저리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옆자리에 사선으로 빗겨 놓은 자신의 의자에 앉은 마틴은 턱을 괴고 까미유를 봤다. 느린 숨을 따라 가슴팍이 느리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장작불에 하얀 머리카락은 붉은빛을 냈다. 온기에 분홍빛으로 물든 피부가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장작은 계속 타올랐다. 눈보라는 창틀을 툭툭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추운 바람이 덮치기엔 방안은 한없이 푸근했다. 담요 밑에서 들뜨는 가슴을 따라 느리게 숨을 쉬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직 서로에게 건네지 않은 인사말을 잠재우고 마틴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이 내리는 따뜻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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