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별.png
리본2-4.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리본2-1.png
리본.png
리본2-3.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별.png
리본.png
리본.png
리본.png
별.png
리본2-4.png

Domino - 2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고 또 객들의 취기가 어느정도 오르자 마틴은 능숙하게 주위에 양해를 구하고 연회장을 뒤로 했다. 재단이 주최한 연회임에도 주요 인물인 마틴 챌피의 부재를 신경쓰는 이는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완벽하게 마틴 챌피의 존재를 잊어버린 연회장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물 흐르듯 흘렀다.

 

    마틴은 연회장 뒤쪽의 계단을 올랐다. 2층의 외부 발코니가 늘어선 복도로 향하는 길이었다. 발코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마틴은 커튼으로 가려진 몇 개의 발코니를 지나쳤다. 여느 연회가 그렇듯이 이런 자리에서도 밀회는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자리를 찾아 서슴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마틴의 발걸음이 멎은 것은 그 때였다.

 

    마틴.

 

    누군가 제 이름을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불렀기 때문이다. 마틴은 그것이 정말 목소리였는지, 혹은 누군가의 상념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무례하게 자신을 머릿속으로 한번 불러 본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커튼 한 쪽을 걷어 내고 소리가 들려 온 발코니 밖으로 나갔다. 두꺼운 커튼에 막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던 시린 공기가 실내로 스며드는 것도 잠시, 커튼은 다시 굳게 닫혔다.

 

    조명 하나 없이 어둑한 발코니 난간에 기대선 뒷모습을 보자 마틴은 속으로 헛웃음을 켰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빛무리들이 아니더라도 그가 까미유 데샹이라는 것을 몰라볼 리는 없었다. 눈도 내리지 않고 달도 없는 고요한 겨울 밤이었다. 그의 옆 얼굴선을 타고 흐르는 반딧불의 녹색 빛이 그의 분위기를 더욱 묘하게 일렁이게 했다. 까미유가 고개를 돌리는 찰나 그의 다갈색 눈이 영롱한 녹색으로 빛나 시야에 불필요한 잔상을 남기고 선글라스 속으로 숨었다.

 

 

 

 

 

 

 

 

 

 

 

 

 

    어느새 한겨울의 반딧불이들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렇게 추운데도. 마틴은 잠시 빛무리에게 빼앗겼던 시선을 다시 까미유에게 돌렸다. 확연히 지난번보다 읽기 쉬워진 그의 마음 속에서 읽어낸 첫번째 울렁거림은 당혹감이었다.

 

    ‘왜지? 나를 기다린 게 아니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제 이름을 불렀다. 혼잣말이었든 뭐든 간에.

 

    “마틴.”

 

선글라스 너머의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글거리고 있었다. 하긴, 방금이 조금 인간미 있었을 뿐, 원래 이렇게 재수없는 인간이다.

 

    “날이 추운데. 왜 나왔나?”

    “피곤한 것 보단 추운 게 낫죠.”

 

둘 사이에 하얀 입김만이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하얗게 부서졌다. 까미유가 금세 붉게 물드는 마틴의 주근깨 박힌 피부들을 훑고는 부러 눈썹을 팔자로 휘었다.

 

    “겉옷이라도 벗어 주고 싶은데, 그랬다가 우리 사이가 들키면 곤란할 테니 말야. 아쉽군.”

 

마틴이 재차 헛웃음을 뱉었다. 무슨 사이? 개뿔이.

 

    “말 뿐이라도 고맙네요.”

 

비웃음을 담은 대답에 까미유가 뭐라고 능글거리며 받아칠 줄 알았는데, 맥빠지게 그는 몸을 틀었다.

 

    “그럼, 나는 이만 들어가 보지.”

 

마틴의 손이 멋대로 움직여 제 옆을 스쳐지나가는 소매를 잡았다. 순간 마틴은 당황을 감추며 눈 하나 깜짝 않고 나직하게 그에게 심문하듯이 물었다.

 

    "내 이름 불렀잖아요."

 

까미유 또한 평이하게 대답했다. 지독한 뻔뻔함이었다.

 

    "그래서?"

    '부정 안 하는 걸 보니 부른 것 맞네.'

 

마틴이 미약한 두통을 느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대하기 어려울까.

 

    "가지 마요. 당신도 지쳐서 여기 나온 거잖아."

    "네가 불편할 텐데."

 

다정한 목소리에 마틴이 뭐 씹은 표정으로 씹어 뱉듯이 말했다.

 

    "나한테 그렇게 착하게 굴 것 없잖습니까, 피차 알 거 다 아는 사이에."

 

그러고는 다시 한숨을 길게 쉬곤 마지못해 하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의 무례를 눈감아 줘서 고맙습니다."

 

까미유가 뭘 그런 걸 신경쓰고 있었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피차 알거 다 아는 사이에."

 

마틴이 난간에 몸을 기댔다. 코트를 걸치지 않아 옷자락에 냉기가 스며들어 곧 뼛속까지 시려 왔다. 기어코 까미유가 겉옷을 벗어 그의 어깨에 둘러 주었고 마틴은 덕분에 추위가 한결 가셨음에도 닭살이 돋았다.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정말 당신 답지 않은 거 알죠."

 

까미유가 굵고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환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까미유 데샹 다운 게 뭔지 아주 잘 알고 계신가 본데…, 착각에 교만인거 알고있지?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나 상처 받아."

 

목소리만은 아주 다정하고 달콤하다. 다디 단 음성이 뇌를 거치면 탄 설탕처럼 씁쓰름했다. 

 

    "하. 당신 속은 난도질하면 흔적도 남지 않을 것처럼 새카맣던데요."

    "그렇다고 정말로 그러진 말아 줘."

 

까미유가 장난스럽게 눈꼬리를 휘었다.

 

    “하긴 이 상황이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당신 자신이겠죠.”

 

    까미유 데샹은 객관적으로 매력적이다. 어트랙티브라는 코드네임을 그가 써야 했을 지도 싶을 만큼. 그리고 마틴은 외관이나 객관적인 정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읽어낸 '진실' 뿐이다. 마틴 챌피가 까미유 데샹에 대해 아는 '진실'들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마음에 안 들기는. 마틴, 내 성에 차는 상대가 몇이나 될 거로 생각해?”

    “그건 칭찬인가요? 아니면….”

    “칭찬이니 부디 곧이곧대로 들어 줘.”

    “…의외네요.”

 

의외야. 마틴은 별빛만이 수놓아진 새카만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며 되뇌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읽어본 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차고 넘쳤다. 마틴은 겉모습만 보고 편견을 가지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편견을 가질 틈도 없이 그들의 상념이 먼저 머릿속에 들이닥치곤 했다. (지금에야 스스로 의도하지 않는 한 적당히 걸러 듣지만)

 

까미유를 직접 만나기 전에도 그가 그저 올곧고 선량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 쯤은 예상했었고 직접 만나고 나서는 확신했다. 그의 말대로 공성전에서 몇 번 팀을 이룬 것 뿐이지만, 마틴은 그 때 읽었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이것 또한 잊을 수 없는 쪽이 맞다.

 

 

 

*

 

 

    “닥터, 산시아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까미유는 조직에 몸담고 있음에도 닥터라는 호칭을 고집했다. 실험이 끝나 한층 예민해진 눈빛이 부하 조직원을 훑었다.

    “누구지?”

    “…16번 샘플입니다.”

    “…아.”

이번 실험 이후 상태가 좋지 않아 쓸모 없어진 샘플이었다. 까미유가 흥미없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처리해.”

    “그… 살려 보내는 조건이었던 걸로 압니다.”

    “무슨 소리야? 우린 살려 보냈어. 그것이 돌아가는 길의 안전까지 보장한 적은 없고.”

    안경 너머 까미유의 안광이 서늘했다. 받은 돈이 목숨값 이라는 걸 그것도 알고 있었을 터인데. 더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귀찮다는 손짓을 하고 까미유는 실험 결과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랫사람이 돌아와 보고했다.

 

    “말씀대로 처리했습니다.”

 

    까미유는 돌아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가 봐.

원하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샘플이 더 필요하겠군. 그럼에도 까미유가 데이터 서류 더미에서 눈을 뗀 것은 그로부터 족히 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수 시간. 살아있던 샘플의 피가 차디차게 식고도 남을 시간.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그에 대한 기억은 이미 불필요한 것으로 분류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

 

 

    그 당시에도 빈틈 없는 남자였기에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무작위으로 그의 머릿속에서 스쳐간 단편적인 기억들 뿐이었다. 그마저도 까미유 본인은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하는 기억들 뿐이었지만 그것이 더욱 그 남자의 차가운 면을 부각시킬 뿐이었다. 이 세상에 특별할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는 남자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니. 소름 돋는 이야기였다. 그 상대가 자신이라면 더욱 더.

 

    까미유 데샹에게 순정이란게 있을 리가 없다. 상념에 빠졌다가 픽 웃고 고개를 젓는 마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까미유가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쓸어내렸다. 기이하게 따뜻했다. 이 인간에게 체온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까미유가 그대로 손을 내려 마틴의 턱을 잡아 올려 시선을 맞추게 했다.

 

    “나 정말 상처 받아.”

    “업보라는 말을 아나요?”

    “내가 얼마나 더 비틀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거기서 더요?”

 

    서로의 입김이 닿을만큼 얼굴이 가까웠다. 마틴은 긴장감 없이 웃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은 것은 그 직후였다. 까미유의 심장소리가 들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눈을 감지 않아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악취미라고 생각했다. 까미유의 손이 뱀처럼 기어 마틴의 뒷목을 받치고 고개가 비틀리며 서로의 혀가 더 깊숙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마틴이 얌전히 입술을 내어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답지 않게 힘조절이 서툴어 상처가 났다. 씁쓰름한 고통과 함께 퍼지는 비릿함에 마틴이 약하게 인상을 썼다. 티 나면 죽여버릴 거예요. 머릿속에 그대로 꽂히는 마틴의 파장에 까미유도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 울려. 일부러 그런거예요. 키스를 하는 도중에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 생소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까미유가 느끼기엔 그랬고, 마틴도 나름 생소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얼굴이 잘생긴 탓인지 갑작스러운 키스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제 능력을 이렇게 눈치 보지 않고 쓰며 교류할 수 있는 상대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껍데기를 한 겹 벗은 기분.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마틴이 까미유를 밀어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모든 것이 이상했다. 까미유는 순순히 밀려났다. 그의 눈이 이채를 띠고 있었다.

 

    “하아…, 뭐요.”

 

까미유가 어깨를 으쓱였다.

 

    “받아 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오해 하진 말고요.”

    “무슨 오해.”

 

    다 알면서 까미유가 웃었다. 다시 봐도 잘생겨서 마틴이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받은 겉옷을 까미유의 가슴팍에 밀치듯이 돌려주곤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이어진 커튼을 걷었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흘리듯이 뱉었다. 못 들어도 내 책임 아니고.

 

    “이브에 시간 비워 놔요.”

삽화1.png
리본2-1.png
카드 14일.png
쿠키14.png
쿠키B2.png
티켓-핑크빌런.png
리본2-4.png
리본2-2.png
리본2-2.png

@DestinAdvent21

Most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