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에는 비밀을
산타 할아버지, ___이에게는 _____을 선물로 주세요.
아이는 갈색 눈을 반짝 빛내며 색연필을 쥔 손에 힘을 준다. 꾹꾹 누른 획이 늘어날 때마다 종이 위로 까드득대는 거친 소리가 쌓인다. 한 문장이 인쇄된 하얀 종이. 글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주어진 공간이다. 아이는 글자 아닌 그림을 그리듯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채워 넣는다. 붙어 있어야 할 획은 떨어지고 잘못 박은 못처럼 글자가 삐뚜름히 기운다. 두 글자밖에 되지 않는 아이의 이름이 널찍하게 준비된 칸을 여유 없이 가득 채운다. 자리가 부족하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옆자리 아이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깊이 집중한 아이는 그저 신중히 자신의 편지를 채워나간다. 하얗고 너른 여백의 중간, 아이는 검은색을 들고 길쭉한 동그라미를 그린다. 하얀 여백이 설원 한복판처럼 광활히 여겨질 만큼 그림은 자그마하다. 검은색을 내려놓고 다음에 쥐는 색연필은 녹색이다. 동그라미보다 작은 녹색 점이 하얀 여백을 가득 메운다. 눈밭을 덮으며 녹색이 피어난다. 하나의 검은 덩어리와 가득한 녹색 점. 아이는 자신의 종이를 들고 교사에게 다가간다.
▧▧이는 뭘 받고 싶어요?
지나치게 추상적인 아이들의 그림을 받아들고 교사가 묻는다. 신이 난 아이들은 대답한다. 바라는 것이 많기도 하다. 커다란 한 장의 종이도 아이들의 비현실적인 바램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종이를 채운다. 산타 할아버지가 될 아이들의 보호자를 향해 보내는 편지다. 알아보기 어려운 그림 옆에 바라는 선물을 글자로 적는 교사의 얼굴은 평온키만 하다. 이윽고 줄을 선 아이의 차례가 온다. 교사가 다시 묻는다. 아이는 답한다.
반짝반짝 벌레요.
반짝반짝 벌레?
네, 반짝반짝해요.
교사는 아이의 종이를 본다. 검은 덩어리, 녹색 점. 반짝반짝 벌레.
교사는 다시 아이에게 묻는다.
반짝반짝 벌레는 뭐예요?
아이는 대답한다.
반짝반짝한 벌레요. 대화는 반복된다.
무의미한 대화가 반복되고 교사는 묻는다. 어디서 봤어요? 아이는 답한다. 반짝반짝 선생님이요! 명랑하게 대답한 아이가 화들짝 놀라 제 앙증맞은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젓는다. 비밀이다. 뻔히 보이는 행동에 교사는 웃음기 어린 한숨을 토해낸다. 잠시만 기다려요? 네! 아이를 앞에 두고 주변으로 고개를 돌린다. 선생님! 봉사자 앞치마를 걸치고 복도를 지나가던 어린 학생이 멈추어서 교사를 바라본다. 유려한 몸짓이 주변을 둘러 목소리를 확인하고 다가온다. 채광 좋은 교실 안으로 겨울 햇살이 부서져 들어온다. 반짝반짝. 하얀 머리카락이 발자국 하나 없는 겨울날의 눈밭처럼 하얗게 반짝거린다. 네, 선생님. 경직된 어린 학생이 대답한다. 교사가 아이의 그림을 보여주면 어린 학생은 웃음을 터트린다.
알겠어요?
네.
적어야 하는데, 뭔가요?
반딧불이요.
선생이 반문하고 어린 학생은 대답한다. 남는 것은 선생의 한숨뿐이다. 데려가서 달래고 다시 그리게 할게요. 부탁해요. 교사는 아이를 맡기고 자신 앞에 서 있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똑같이 묻는다. ▧▧이는 뭘 받고 싶어요? 크리스마스이브 테이블 위에서 태엽이 돌아가는 병정 인형 같다. 어린 학생은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간다. 교실 문이 열리자 달라붙었던 시선들은 어린 학생을 확인하고는 자리로 돌아간다. 손을 잡은 둘이 걷는다. 교실과 떨어지고 나서야 어린 학생이 말한다.
산타 할아버지한테도 비밀로 해줘야지. 비밀이잖아.
산타 할아버진데?
그럼 선생님은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니까 안 보여줄래.
안 돼요!
다리를 옆에서부터 붙잡아오는 자그마한 손. 어린 학생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 기다란 다리를 접는다. 아이의 칭얼거림은 애정으로 길러낸 사랑스러움이다. 어린 학생이 아이 앞에 양 손바닥을 겹친 손을 내밀어준다. 납작하게 닿아있던 손을 달걀 하나 넣은 것처럼 둥글게 부풀린다. 신이 난 아이는 오므린 손가락을 잡아당긴다. 손은 아직 벌어지지 않는다. 다음에는 진짜 비밀 지켜줘야 해, 마틴. 할 수 있어요! 아이가 기운차게 대답한다. 재촉하는 아이와 눈을 마주한다. 굳어있던 얼굴이 가볍게 풀어진다. 이윽고 하얀 머리카락처럼 하얗게 번진 갈색 눈 위로 녹색 빛이 피어오른다. 손을 벌린다. 열린 손 사이로 포로록 반짝이는 벌레가 날아오른다. 메리 크리스마스. 속삭이는 목소리가 함박눈처럼 포곤하게 내려앉는다. 미소가 번진다.









